연춘

심경은 교수의 요리에세이 『오늘도 핑크 한스픈』 7화

꽃무늬 접시 하나가 평범한 음식을 더 특별하게 보이게 했던 어린 경은이의 발견

예쁜 그릇을 고르는 작은 취향이 색과 여백을 보는 플레이팅 감각으로 자라나다

맛있는 한 끼에 아름다움을 더하는 법을 배우며 나만의 요리 스타일을 만들어가다

 

 

 

7화. 예쁜 그릇 하나의 힘

 

어릴 때부터 나는 그릇을 유심히 보는 아이였다.

밥상에 음식이 올라오면 먼저 무엇이 담겼는지 보고, 그다음에는 그 음식이 어떤 그릇에 담겼는지를 봤다.

 

같은 계란말이인데도 하얀 접시에 놓였을 때와 작은 꽃이 그려진 접시에 놓였을 때는 이상하게 달라 보였다.

꽃무늬 접시에 담긴 계란말이는 조금 더 노랗고 따뜻해 보였고, 초록색 나물은 더 싱싱해 보였다.

나는 그게 재미있었다.

 

“엄마, 이 접시에 담으면 더 예쁜데.”

엄마는 아마 속으로 생각했을 것이다.

‘먹으면 다 똑같지.’

 

하지만 어린 나는 꽤 진지했다.

맛있는 음식이 예쁜 그릇을 만나면 더 맛있어 보인다는 것을 나는 이미 알고 있었던 것 같다.

 

물론 그때는 그것을 플레이팅이라고 부르는 줄도 몰랐다.

그냥 예쁜 게 좋았다.

 

우리 집 찬장에는 여러 가지 그릇이 있었다.

매일 쓰는 밥그릇과 국그릇.

반찬을 담는 작은 접시.

조금 특별한 날 꺼내는 그릇.

 

그중에서도 내가 좋아하는 것은 단연 꽃무늬가 있는 그릇이었다.

접시 가장자리에 작은 장미가 피어 있거나, 분홍색 꽃잎이 한쪽에 살짝 그려진 그릇을 보면 자꾸 손이 갔다.

아무것도 담지 않아도 예뻤다.

 

그래서 가끔은 찬장을 열어놓고 그릇을 구경하기도 했다.

“뭘 그렇게 보고 있어?”

“그냥.”

 

대답은 그렇게 했지만 사실 나는 상상하고 있었다.

‘여기에는 뭘 담으면 예쁠까?’

사과를 깎아도 예쁜 접시에 담고 싶었다.

 

토마토 몇 조각도 가지런히 놓아보고 싶었다.

김치 한 접시조차 아무렇게나 담기보다 한쪽으로 조금 정리해서 놓으면 더 좋아 보였다.

 

어린 내가 얼마나 잘했겠는가.

지금 생각하면 엉성하고 어설펐을 것이다.

 

그래도 그때부터 내 손은 음식의 위치를 조금씩 움직이고 있었다.

한 조각을 왼쪽으로 옮기고,

다른 한 조각은 오른쪽으로 돌려놓고,

색이 예쁜 것은 위쪽으로 보이게 했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니었다.

그냥 그렇게 하고 싶었다.

 

어느 날에는 내가 만든 간단한 음식을 접시에 담아놓고 한참 바라본 적이 있었다.

맛은 크게 달라질 것이 없었다.

 

그런데 그릇을 바꾸니 음식의 분위기가 확 달라졌다.

나는 접시를 하나 바꿨을 뿐인데 기분까지 좋아지는 것이 신기했다.

 

그때 아주 작은 생각 하나가 생겼다.

‘음식은 어디에 담느냐도 중요하구나.’

지금의 나는 그것을 너무 잘 안다.

 

음식의 색과 그릇의 색.

그릇의 크기와 음식의 양.

그릇의 모양과 음식의 형태.

그리고 남겨두는 여백.

이 모든 것이 음식의 첫인상을 만든다.

 

하지만 처음부터 그렇게 어려운 말로 배운 것은 아니었다.

내 시작은 아주 단순했다.

“이 접시가 더 예쁜데.”

그 한마디였다.

 

지금 학생들에게 요리를 가르칠 때면 접시를 보는 순간이 있다.

음식은 맛있게 잘 만들었는데 접시가 너무 크거나,

반대로 작은 접시에 음식을 잔뜩 올려놓은 경우도 있다.

음식 색과 그릇 색이 비슷해 음식이 잘 보이지 않을 때도 있다.

 

그럴 때 나는 말한다.

“그릇도 요리예요.”

 

처음에는 학생들이 조금 의아한 표정을 짓는다.

그릇은 그저 음식을 담는 도구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음식을 다른 접시에 옮겨보면 금방 안다.

“어? 이게 훨씬 낫네요.”

그 말을 들으면 나는 괜히 기분이 좋다.

 

어린 시절 내가 느꼈던 그 작은 발견을 학생도 만나는 것 같아서다.

그렇다고 좋은 그릇이 꼭 비싸야 하는 것은 아니다.

나는 그것도 오래 요리를 하면서 배웠다.

 

비싼 그릇이라고 모든 음식이 예뻐지는 것은 아니다.

아주 평범한 흰 접시가 오히려 음식의 색을 가장 잘 보여줄 때도 있다.

작고 소박한 종지 하나가 그날의 밥상을 더 따뜻하게 만들어줄 때도 있다.

 

중요한 것은 가격보다 어울림이었다.

이 음식에는 어떤 색이 어울릴까.

조금 깊은 그릇이 좋을까.

넓은 접시가 좋을까.

따뜻한 느낌을 줄까.

깔끔한 느낌을 줄까.

 

그런 생각을 하기 시작하면 그릇은 단순한 그릇이 아니다.

음식의 이야기를 함께 만들어주는 배경이 된다.

 

나는 핑크색 그릇을 좋아한다.

지금도 그렇다.

 

하지만 모든 음식을 핑크색 접시에 담는 것은 아니다.

빨간 음식은 오히려 흰색이나 어두운 접시에 담았을 때 더 선명하게 보일 수 있고,

초록색 채소는 크림색 접시 위에서 더 부드럽게 보인다.

 

예쁜 것을 좋아하는 것과 예쁘게 만드는 것은 조금 달랐다.

예쁘게 만들기 위해서는 때로 좋아하는 것을 덜 써야 했다.

그것도 요리를 하면서 배웠다.

 

핑크를 좋아한다고 핑크를 가득 채우는 것이 아니라,

필요한 순간에 한스푼만 더하는 것.

그것이 더 세련될 때가 많았다.

 

플레이팅을 할 때 내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 중 하나가 여백이다.

어릴 때는 접시가 비어 있으면 뭔가 부족해 보였다.

 

그래서 자꾸 채우고 싶었다.

한 점 더.

꽃 하나 더.

소스 한 줄 더.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알게 되었다.

빈 공간도 음식의 일부라는 것을.

 

접시 위에 여백이 있어야 음식이 숨을 쉰다.

사람도 그런 것 같다.

 

 

 

 

 

 

모든 시간을 꽉 채운다고 잘 사는 것은 아니다.

조금 비어 있는 시간이 있어야 생각할 수 있고,

쉬어갈 수 있고,

다시 무언가를 채울 수 있다.

 

나는 그릇을 보면서 삶을 배운 적도 많다.

예쁜 그릇 하나가 사람의 기분을 바꾸는 순간도 있다.

 

아무 일도 하기 싫은 날.

대충 한 끼 때우고 싶은 날.

그럴 때 나는 일부러 좋아하는 그릇을 꺼내기도 한다.

 

별것 없는 음식이어도 괜찮다.

밥 조금,

계란 하나,

나물 한 가지.

그런데 좋아하는 접시에 가지런히 담아놓으면 마음이 조금 달라진다.

 

‘그래도 잘 먹어야지.’

그 마음이 생긴다.

음식을 정성스럽게 담는다는 것은 때로는 나 자신을 대접하는 일이기도 하다.

 

누군가에게 보여주기 위해서가 아니라,

내가 먹을 한 끼를 조금 더 소중하게 만들어주는 일.

나는 그것도 요리라고 생각한다.

 

학생들에게 플레이팅을 가르칠 때도 비슷한 말을 한다.

“누가 봐주지 않아도 예쁘게 담아보세요.”

요리를 배우는 초반에는 평가를 받기 위해 만드는 경우가 많다.

 

시험을 위해,

점수를 위해,

선생님에게 보여주기 위해.

하지만 정말 요리를 오래 하려면 그 단계를 넘어야 한다.

 

혼자 먹을 때도 조금 예쁘게.

가족에게 내놓을 때도 조금 정성스럽게.

누가 칭찬하지 않아도 접시 가장자리를 한번 닦는 것.

그런 작은 습관이 결국 사람의 요리를 만든다.

 

나는 지금도 완성된 음식을 접시에 담고 나면 한 걸음 물러나 바라본다.

가까이에서는 잘 보이지 않는 것이 멀리서는 보인다.

 

“조금 답답한데.”

그러면 하나를 뺀다.

“색이 조금 심심한데.”

 

그러면 초록색을 조금 더한다.

“여기는 비워두는 게 낫겠다.”

그렇게 접시는 조금씩 완성된다.

 

맛을 만드는 데 불과 소금이 필요하다면,

접시를 완성하는 데는 눈과 기다림이 필요한 것 같다.

 

서두르지 않고 한번 바라보는 것.

그 몇 초가 음식의 인상을 바꾼다.

 

생각해보면 나는 아주 오래전부터 그 몇 초를 가지고 있었다.

어린 경은이가 꽃무늬 접시를 들고

‘여기에 담으면 더 예쁘겠다.’

생각했던 순간.

 

그때 이미 내 안에는 작은 플레이팅의 씨앗이 있었던 것 같다.

그 씨앗이 시간이 지나면서 음식의 색을 보는 눈이 되고,

접시의 여백을 보는 눈이 되고,

 

학생들에게

“한번 멀리서 보세요.”

라고 말하는 지금의 내가 되었다.

 

사람은 자신의 시작을 나중에야 알아보는 경우가 많다.

그때는 그냥 좋아했던 일.

그냥 재미있어서 했던 일.

아무 의미도 없어 보였던 작은 행동.

그런 것들이 나중에는 하나의 길이 되기도 한다.

 

내게 예쁜 그릇이 그랬다.

처음에는 그냥 꽃이 그려져 있어서 좋았다.

그다음에는 음식이 더 예뻐 보여서 좋았다.

그리고 지금은 그릇 하나에도 사람을 생각한다.

 

이 음식을 받는 사람이 어떤 기분이 들까.

한입 먹기 전에

“예쁘다.”

하고 웃을 수 있을까.

 

나는 그 순간이 좋다.

좋은 음식은 배를 채운다.

하지만 아름답게 차려진 음식은 마음까지 조금 움직인다.

 

물론 음식의 본질은 맛이다.

그것은 변하지 않는다.

 

그렇지만 맛있는 음식을 조금 더 정성스럽게 보여줄 수 있다면,

나는 기꺼이 그렇게 하고 싶다.

 

누군가를 위해 접시 하나를 고르고,

조금 가지런히 담고,

마지막에 작은 잎 하나를 올리는 것.

 

그 작은 수고까지도 음식에 포함된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래서 지금도 예쁜 그릇을 만나면 마음이 설렌다.

예전처럼 무조건 갖고 싶은 마음보다 이제는 다른 생각이 먼저 든다.

 

‘여기에 어떤 음식을 담으면 좋을까?’

그리고 집으로 돌아와 음식을 만들 때 그 그릇이 떠오른다.

 

음식과 그릇이 잘 만나는 순간,

나는 여전히 어린아이처럼 기분이 좋아진다.

그 순간만큼은 꽃무늬 접시를 바라보던 어린 경은이와 지금의 내가 별로 다르지 않다.

 

아마 좋아하는 마음이라는 것은 그런 것인가 보다.

시간이 지나면서 더 깊어지기는 해도,

처음 설렜던 마음 한 조각은 그대로 남아 있는 것.

 

나에게 그 마음은 오늘도 접시 위에 있다.

예쁜 그릇 하나.

따뜻한 음식 하나.

 

그리고 누군가 맛있게 먹어주기를 기다리는 마음 하나.

그 정도면 충분하다.

 

경은의 한마디

“그릇은 음식을 담는 도구가 아니라, 그 음식의 첫인상을 담는 작은 무대다.”

 

오늘의 핑크 한스푼

오늘은 평소 자주 쓰지 않았던 가장 좋아하는 접시 하나를 꺼내보세요.

거창한 음식이 아니어도 됩니다.

 

과일 몇 조각도 좋고,

계란말이 몇 점도 좋고,

평범한 반찬 하나도 좋습니다.

 

접시에 조금 여백을 남기고 천천히 담아보세요.

그리고 먹기 전에 잠깐 바라보세요.

 

평범했던 한 끼가 조금 더 특별해지는 순간.

그것이 오늘의 핑크 한스푼입니다.

 

 

 

작성 2026.09.08 22:18 수정 2026.09.08 2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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