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계 음식의 역사를 따라 이번에는 남태평양의 New Zealand으로 떠나보자. 오늘의 주인공은 새하얀 머랭 위에 생크림과 과일을 풍성하게 올린 파블로바(Pavlova)다.
파블로바를 처음 보면 화려한 케이크처럼 보이지만 밀가루로 만든 일반적인 케이크와는 전혀 다르다. 달걀흰자와 설탕을 휘핑해 머랭을 만들고 낮은 온도에서 천천히 구워낸다. 겉은 바삭하게 부서지지만 안쪽은 마시멜로처럼 촉촉하고 부드럽다.
그런데 이 달콤한 디저트의 이름은 음식과 전혀 관계없는 한 여성에게서 시작됐다.
바로 20세기 초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던 러시아 발레리나 Anna Pavlova다.
파블로바는 가볍고 우아한 춤으로 세계적인 스타가 됐으며 1920년대 Australia와 뉴질랜드를 순회 공연했다. 그녀의 공연은 남태평양에서도 큰 화제가 됐고, 이후 그녀의 이름을 붙인 음식과 상품들이 등장했다.
그중 가장 유명하게 살아남은 것이 바로 파블로바다.
하지만 여기서 세계 음식사에서 손꼽히는 흥미로운 '원조 논쟁'이 시작된다.

뉴질랜드에서는 파블로바가 자국에서 먼저 만들어졌다고 주장해 왔고, 호주에서도 자국 요리사가 파블로바를 개발했다는 이야기가 널리 전해졌다. 그래서 지금까지도 두 나라 모두 파블로바를 자국을 대표하는 디저트로 사랑한다.
한동안 가장 유명했던 호주 쪽 이야기는 1930년대 퍼스의 한 호텔에서 요리사 허버트 삭스(Herbert Sachse)가 새로운 디저트를 만들었다는 것이다. 완성된 디저트를 본 사람이 파블로바의 춤처럼 가볍다고 감탄하면서 그 이름을 붙였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하지만 문제는 그보다 앞선 시기의 뉴질랜드 자료에서도 '파블로바'라는 이름의 음식이 발견된다는 점이다.
더욱 흥미로운 것은 머랭에 크림과 과일을 곁들이는 조리법 자체가 파블로바의 남태평양 순회 이전부터 유럽과 미국 등지에 존재했다는 연구도 있다는 사실이다.
결국 오늘날에는 "누가 어느 날 갑자기 파블로바를 발명했다"고 단정하기보다는 기존 머랭 디저트 문화가 남태평양으로 전해져 현지에서 발전했고, 유명 발레리나의 이름과 결합하면서 지금의 파블로바가 형성됐다고 보는 시각도 있다.
그렇다면 왜 하필 발레리나의 이름이 디저트에 붙었을까?
파블로바를 한입 먹어보면 그 이유를 조금은 상상할 수 있다.
포크를 대는 순간 '사각' 하고 얇은 머랭 껍질이 깨진다. 그 안에서는 구름처럼 부드러운 속살이 나타나고 생크림이 녹아든다. 여기에 딸기와 키위, 패션프루트 같은 새콤한 과일이 달콤함을 잡아준다.
무겁고 진한 케이크와 달리 가볍고 섬세한 느낌이 강하다. 당시 사람들에게는 무대 위를 날아다니듯 춤추던 파블로바의 모습과 잘 어울리는 디저트였을 것이다.
오늘날 파블로바는 뉴질랜드와 호주의 크리스마스와 여름철 가족 모임에서 특히 사랑받는다. 남반구의 크리스마스는 한여름이기 때문에 차갑게 준비한 생크림과 신선한 과일을 올린 파블로바가 축제 식탁과 잘 어울린다.
재미있는 것은 원조를 놓고 오랫동안 경쟁해온 두 나라가 결국 이 디저트를 누구보다 사랑한다는 사실이다.
때로 음식의 역사는 하나의 정답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사람과 문화가 이동하고 기존 조리법이 새로운 지역의 재료와 만나면서 조금씩 모습을 바꾸기 때문이다.
러시아 발레리나의 이름에서 시작해 남태평양 두 나라의 국민 디저트가 된 파블로바. 바삭한 머랭 한 조각에는 발레와 여행, 문화교류 그리고 아직 끝나지 않은 달콤한 원조 논쟁까지 함께 담겨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