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에서 교육을 진행하다 보면, 새롭거나 낯선 활동 앞에서 시작도 하기 전에 스스로 한계를 정해 놓고 "할 수 없다"고 말하거나, 자신이 한 일이 맞는지 틀리는지 확신하지 못해 불안해 하는 아이들을 자주 만나게 될 때가 있습니다.
“선생님, 저는 어차피 못해요. 잘하는 것이 없어요.”
“선생님, 제가 한 것이 맞나요?”
이러한 아이들을 만날 때, 부모나 교사들은 흔히 의욕이 없거나 의지가 부족한 아이, 혹은 자신감이 너무 낮아서 쉽게 포기하는 아이라고 판단할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너는 할 수 있어, 해보지도 않고 왜 그렇게 생각해?” 라며 자신감을 주려고 격려를 건네거나, 소극적인 태도에 답답함을 느끼며 행동을 재촉하기도 합니다.
“못해요”라는 말 뒤에 숨은 마음
그럼 아이의 “못해요”라는 말은 정말 능력의 부족에서 비롯된 것일까요? 아니면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만든 방어막 일까요? 이 한마디는 단순한 기능 부족의 표현이 아니라, 실패했을 때 느끼게 될 수치심과 좌절감을 미리 피하려는 심리적 방어 기제일 수 있습니다.
과제를 해내지 못할 것이라는 불안 때문에 아예 시도하지 않음으로써 자신의 자아를 보호하려는 것입니다. 역설적으로 ‘실패하지 않기 위해 시작하지 않는’ 행동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자기효능감과 학습된 무기력
이러한 현상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는 심리적인 핵심 개념은 자기효능감(self-efficacy)과 학습된 무기력(learned helplessness)입니다.
알버트 반두라(Bandura, 1977)가 제안한 자기효능감은 특정 과제를 성공적으로 수행할 수 있다는 자신의 능력에 대한 주관적인 믿음을 뜻합니다.
국내 학술 연구에서도 학업적 자기효능감은 학습 동기를 유지하고, 과제 수행을 지속하게 하는 중요한 요인으로 제시되어 왔습니다(김아영, 2004).
자기효능감이 높은 아이는 어려운 과제를 만나도 자신의 노력을 조절하며 도전을 이어 갑니다. 반면 자기효능감이 낮아진 아이는 자신의 역량을 믿지 못하기 때문에 과제에 접근하기도 전에 포기할 수 있습니다.
마틴 셀리그만(Seligman, 1972)의 학습된 무기력 이론에 따르면, 통제할 수 없는 실패나 반복적인 비판을 경험한 사람은 ‘어떤 노력을 해도 결과를 바꿀 수 없다’고 믿게 될 수 있습니다. 이러한 믿음은 아동의 학습 동기와 시도 행동을 약화시킵니다.
“어차피 못해요”라는 말을 반복하는 아이에게는 과거의 미숙한 경험이나 반복해서 지적받은 부정적인 기억이 누적되어, ‘시도해도 소용없다’는 무기력이 학습되어 있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점』이 보여 주는 시작의 힘
피터 H. 레이놀즈(Peter H. Reynolds)의 그림책 『점』은 이 심리적 과제를 매우 시각적으로 풀어냅니다. 미술 시간이 끝났지만 주인공 베티는 아무것도 그리지 못한 채 흰 도화지만 노려봅니다.
“난 아무것도 못 그려요!”라며 짜증을 내는 베티에게 미술 선생님은 비판이나 강요 대신 가만히 웃으며 “무엇이든 좋으니 그냥 점 하나만 찍어보렴”이라고 말합니다.
베티가 화가 난 상태로 도화지 한가운데에 점 하나를 쿡 찍자, 선생님은 그 점을 유심히 바라본 뒤 베티에게 이름을 적어달라고 요청하고, 일주일 뒤 그 점을 멋진 금색 액자에 걸어둡니다.
베티가 흰 도화지 앞에서 느꼈던 거부감은 완벽하게 그려내야 한다는 부담감의 시작일 수도 있습니다. 이때 선생님께서 건넨 “점 하나만 찍어보렴”이라는 요청은 과제의 난이도를 극도로 낮추어(micro-tasking) 베티가 느끼는 실패 불안을 완화합니다.
선생님은 훌륭한 그림을 요구하지 않고 단지 시도할 수 있도록 문턱을 낮춰주었으며, 아주 작은 반응을 그 존재 자체로 인정해 주었습니다. 자신의 점이 액자에 걸린 것을 본 베티는 "내가 이것보다 더 멋진 점도 그릴 수 있어!"라며 변화합니다.
자신의 행동이 인정받았다는 경험, 그리고 ‘나도 할 수 있다’고 느끼게 한 작은 성공 경험이 자기효능감을 다시 키운 것입니다. 이러한 성공 경험은 자기효능감을 높이는 가장 강력한 원천입니다.
아이의 마음을 여는 단계별 질문
아이와 상호작용할 때는 관찰에서 감정 이해로, 감정 이해에서 행동으로 이어지는 단계적인 질문이 효과적입니다. 먼저 “베티가 화를 내며 연필로 종이에 힘껏 내리꽂은 것은 무엇이었나요?”라는 관찰 질문으로 상황을 객관화합니다.
이어서 “시작하기도 전에 잘 안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을 때 어떤 감정이 들었는지?, 그때 마음은 어떤 색이었을까요?”라는 감정 이해 질문으로 공감하며 불안을 수용합니다.
나아가 “선생님이 베티의 점을 액자에 넣어주었을 때, 베티는 왜 마음이 달라졌을까?”라는 관점 질문을 거쳐, “오늘 우리가 해볼 일 중에서 '아주 작은 점 하나'처럼 가장 가볍게 시작해 볼 수 있는 첫 단계는 무엇일까요?”라는 확장 질문으로 행동을 이끌어낼 수 있습니다.
모든 변화는 작은 『점』에서 시작된다
모든 변화는 바로 백지 위에 찍힌 작은 『점』하나에서 출발합니다.
아이에게 필요한 것은 언제나 큰 도전이나 즉각적인 성공만은 아닙니다. 때로는 실패에 대한 두려움을 내려놓고 시작할 수 있도록, 과제를 아주 작게 나누어 주는 일이 먼저 필요합니다.
그리고 그 작은 시도를 누군가가 알아봐 주고 존중해 줄 때, 아이는 비로소 다음 시도를 준비합니다.
단 하나의 점에서 시작된 주인공 패티의 변화처럼, 교육도 아이의 마음을 깊이 이해하는 작은 관찰과 적절한 질문에서 출발합니다.
아이가 “어차피 못해요”라고 말할 때, 그 말 너머에 있는 두려움을 먼저 살펴봐 주세요.
그리고 함께 작은 점 하나를 찍어 보세요. 그 점이 아이들의 올바른 성장을 돕는 소중한 첫걸음이 될 것입니다.
[필자 소개]
함선미 칼럼리스트
그림책을 통해 사람과 사람을 잇는 ‘소통디자이너’.
담연에듀연구소 대표, 커뮤니코 부대표.
참여형 워크숍의 교육 혁신가, 독서토론 전문강사.
『고전 AI 는 힙(HIP)하다』의 저자.


















